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체험수기

제목 2018년도 선정작: 알면 배우러 왔겠나
작성자 심리치료학과대표
작성일자 2021-11-01
첨부파일
알면 배우러 왔겠나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심리치료학과 1학년 편덕용
모르니까 배우러 왔지
사십 년 넘게 전기 케이블이나 차단기 같은 전기 재료 도매상으로 살아오는 내내 나 는 한 번도 바보라고 불려본 적이 없었다. 거래처, 같은 도매업자들, 동네 친구들도 내 가 중학교조차 나오지 못했다는 건 짐작조차 못했다. 도매업의 특성상 새벽같이 현장 에 가서 꼼꼼하게 물량을 채우고 나면 오후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날들이 이어졌다. 은퇴 후 그저 여유로운 나날을 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 뿐, 생활의 공백을 어떻게 메꿀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. 평생 해온 일을 그만두자 내가 쓸모 없어진 것처럼 느껴졌다. 괜한 쓸쓸함에 가족들 사이에 작고 성가신 불화를 일으킨 끝 에, 문득 새로운 길이 눈에 뜨였다. 공부였다. 가족들은 뒤늦은 주책이라며 타박하는 대신 적극 지원해 주었다.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학업을 다시 쌓을 수 있다는 데 설렜지만, 한편 남들 다 있는 고등학교 졸업장을 이제야 딴다는 게 부끄러워서 쉬쉬하 며 목동부터 검정고시 학원이 있는 신도림까지 걸어 다녔다. 더워도 추워도 끈질기게 걸어 다녔다. 끝내 중학교와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차례차례 합격할 수 있었지만, 여전 히 채워지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. 딸 같은 며느리가 기왕지사 학업에 도전한 겸 대학 까지 가라며 조건으로 노트북을 걸었을 때, 비로소 나는 내가 뭘 원했는지 알게 되었다. 우여곡절 끝에 간 대학에서는 한 뼘조차 써본 적 없는 글을 열 장 넘게 쓰라고 했고, 영어는 모르는 단어 투성이, 심지어 과제로 생소한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라고 했다. 나는 지난 살아온 세월 내내 한 번도 된 적 없던 바보가 되어버렸다. 하지만 바보가 된다는 건 생각보다 기분 나쁜 일은 아니었다. 나는 바보 처럼 우직하게 손이 아플 때까지 글을 쓰고, 시 시때때로 영어 단어를 적은 메모장을 보고, 보 라는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다. 그래도 어렵다. 바보 같은가? 그럼 아는 사람이 배우러 왔겠는가, 모르니까 배우러 왔지!

공부가 제일 쉽다는 말
아이들이 한창 학교에 다닐 무렵,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있었다. 사회에서는 도둑놈 도 사기꾼도 만나게 마련이고 그 와중에 코라도 베이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살아 야 한다는 것이었다. 그런고로 너희들이 하는 공부가 가장 쉽다고 말하면서 공부가 힘 들다고 투덜거리는 아이들의 입을 막았다. 했던 말이 그대로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 랐다. 대학 과제 때문에 힘들어 하는 내게 다 자란 아이들은 공부가 가장 쉽다고 하지 않았냐며 변죽을 울린다. 좀 얄밉기는 하지만, 이미 한 말이니 도로 주워 담기에는 너 무 늦었다. 공부는 하면 할수록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아진다는 것도 이제야 알 았다. 대학을 다니면서 컴퓨터와 영어를 배우러 학원을 다니고, 종종 학생이 술을 마 시고 말을 바르게 써야 하지 않겠냐며 놀림 섞인 타박을 듣기도 한다. 하지만 이전까 지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쳤던 주변 풍경이며 쓴 말들이 어떻게 내게 다른 풍경과 말로 다가왔는지 생각해 보면, 하루하루가 새롭다. 똑같이 흘러가는 하루를 어떤 우연 한 사고 없이 스스로 바꿀 수 있을까? 아마 공부가 가장 쉬운 방법이리라. 하던가와 하 든가 중 어떤 표현이 맞고, 강박과 강하라는 생소한 표현이 심리학에서 어떻게 설명되 는지, 저 영어로 된 간판을 어떻게 읽고 어떤 뜻인지 알아낼 때, 하나하나 배우고 익힐 때마다 나는 내 하루를 새롭게 바꿀 수 있었다.

모든 길에는 끝이 있다 
아버지는 우리 오남매의 학업을 끝까지 지원해주지 못한 게 한이 남는다고 입버릇 처럼 말씀하셨다. 이제 그 한을 풀어주기 위해 대학까지 입학했으니 등록금이나 내달 라고 했던 농담에, 아버지는 정말 몇백만 원이나 되는 등록금을 내주셨다. 도매업종도 한 번 바꾼 적 없이 끝까지 했던 나였으니, 아마 도중에 포기하는 일 없이 끈덕지게 하 리라고 믿으셨을 터였다. 그 말대로 나는 끈덕지게 공부에 달라붙었다. 이제 2학년이 된 손주 녀석이 키보드 타자가 틀렸다며 타박을 줄 때도 공연히 마음 상해하는 대신 우직하게 연습했다. 무작정 아는 사람들에게 기대는 대신, 하는 방법만 알려달라고 했 다. 아무리 앞서서 길을 가버린다 해도 나는 포기하는 일 없이 끈질기게 따라 갈테니 걱정 말라고 호언장담했다. 대학에서 처음 본 중간고사에서도 기말고사 때 잘하겠다 는 생각만 했지, 포기할 생각 따위는 해본 적 없었다. 완벽해지지는 않더라도, 끈질기 게 끝까지 가겠다는 생각으로 임하다 보면 이전보다는 훨씬 나아질 테니까. 내가 살아 온 나날들은 결코 짧지 않다. 나는 도매상으로서 기나긴 삶의 길을 걸어왔다.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서 순찰대 활동 중 마주친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 을 때, 그 순간부터 나는 다른 길을 발견했다. 앞으로 살아갈 날들도 이전에 걸어온 길 처럼 길고 짐착조차 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일 터다. 하지만 나는 아무리 길고 험한 길 이라도 끝까지 나아갈 각오가 되어 있다.